작년 여름 즈음에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기운을 얻곤 했었다. 블로그에 '나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감정을 토로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삼자가 글을 읽는 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행여나 그 사람이 볼까 봐 당신과의 추억은 잘 정리해두겠다는 것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쓰고 싶은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이 되었건만 애써 그 마음을 다독이느라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때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보고 자신들의 이별은 가슴 아프지만, 블로그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그런 슬픔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판단 아래 사람 속도 모르고 '별로 안 힘들어 보이던데'라는 말이 참으로 야속하게만 들렸다. 쉬운 이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단지 먼저 말로 하지 않았을 뿐 마음의 준비는 그 즈음에 하고 있었기에 다른 이들보다 빨리 털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위기를 누군들 잘 극복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쯤에서 멈춰야만 할 거 같아서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이별 최적의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약한 모습을 그 사람에게 보이기 싫었고 당신과의 이별 때문에 생겨버린 상처의 절절한 아픔을 잠시라도 느꼈다는 것조차 들키고 싶지 않았다. 상대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존심은 꺾을 수 있되 내 마지막의 '약한 모습'은 철저하게 묻어두고 싶었다. 그때 나는 그랬었다..
요즘 들어 머리 속이 복잡한 일이 많아 이런 저런 상념만 깊어져 예전에 했던 무비 테라피를 해볼까 하고 영화 찾아 삼만리를 하건만 원래 좋아했던 잔잔한 감동이 배이는 '드라마' 장르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다. 그래서 웬만하면 안 보던 '코미디' 장르를 물색해서 보는데도 10분도 안 되어 끄고 다시 다른 거 보다가 또 끄고.. 이러한 행동만 숱한 반복중이다. 아무 생각 없이 몸으로 웃기는 영화를 보고서 깔깔 거리고 웃었으면 좋겠는데.. 어제던가? '전차남'을 봤는데 그 유치하고도 뻔한 이야기를 얼마나 몰입해서 봤는지 모르겠다. 가볍게 별 생각 없이 기분 전환용으로 그만한 게 없더라. 요즘은 음악과 영화, 책과 담을 쌓으며 지내는 슬럼프가 아닐까 싶다.
한 달 전에 방을 발칵 뒤집어놓으면서 추억 정리를 했었는데 그러다가 첫사랑과 관련된 사진과 편지, 일기장을 찢어만 놓고 버리지 못한 상자가 서랍 구석에 있었다. 2년 전쯤 8년 만에 한국을 온 메탈리카의 공연 소식에 마음이 동하여 그에게 보내지는 못하고서 이 공간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를 적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안녕'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만 해도 그는 내게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날 그 흔적을 본 순간.. '옛사랑'이란 느낌이 이런 거구나 하고 처음 느껴봤다. 첫사랑에서 옛사랑으로 바뀌는 그 아련한 느낌을 뭐라고 설명 해야 할까. 첫사랑이라 부르기엔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 그런 걸까. 마지막으로 서신을 교환한 날짜를 보니 2005년 6월 28일이다. 마지막 편지 한 통은 다른 곳에 따로 보관이 되어 있어 지금까지 온전히 가지고 있을 수 있었던 것. 내가 '하오체'의 편지 어투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 사람의 영향 덕분이다. '연모, 정인'이란 말이 가득하던 그 편지. 그 편지만은 버리지 않을 걸 그랬다. 나중에 더 나이 먹어서 다시 읽더라도 참 기분 좋은 편지였을 텐데. 이상은의 '언젠가는' 이 노래를 들으면 가끔 이 사람 생각이 드문드문 나곤 한다. 그가 편지에도 썼듯 그의 삶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과 많이 비슷한 가사라는 말에. 내게 옛사랑으로 이제는 기억되는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면 언제든 연락할 수는 있지만 둘다 만나기만 하면 감정을 정리하는데 서툴어서 우린 절대 만나면 안 된다. 잘 지내고 있죠 내 옛사랑.
상념을 없애려면 학문에 좀 더 정진하는 수밖에. 상념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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