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이라 몇 주간 여행객 한 번 못 만나고 현지인과 그때그때 익힌 터키어를 손짓 발짓해가며 이야기하다 보니 한국말로 수다 떨고 싶어 '그리운 고국' 이렇게 부르짖을 즈음 우연히 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맞은편에서 아시아의 피가 흐르는 여행객이 걸어온다. 둘 다 눈이 마주친 순간, '아~ 한국인이에요?' 하고 외치며 얼싸 안고 난리가 났다. 얼마나 반가웠다고. 특히, 나는 한국말을 못 해 입에 거미줄을 친 상태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너무도 감사했다는. 그래서 새벽까지 이야기하고 또 하고, 완전히 신이 나셨다. 역시 빠질 수 없는 19금 이야기도 더불어! 아무튼 오늘 밤이면 야간버스를 타고 서로 각자의 여행길에 오르기 때문에 론리에서 소개한 이름난 레스토랑에서 마지막 만찬 겸 배불리 먹어 주기로 했다. 정말 맛있었고 흡족했었다... 여기까지는... 어마마마한 사태가 벌어질 것을 몰랐으니까.
이 친구와 이집트에서 재회할 것을 약속했고 카이로에서 상봉을 했는데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물갈이'를 했던 사연 중.. 이 아이도 여기 음식을 먹고 난 뒤부터였고 나 역시 시리아 넘어가기 직전이었는데 진짜 죽다가 살아났었다. 서로 원인을 분석해보니 그 시점이 바로 '울파의 그 음식점'이라는 거...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 이런 대화를 이어갔으니 저 음식점을 그냥 확! 나의 물갈이는 시리아 여행 중에도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동행했던 오라버니가 배탈에 그만인 '정로환'을 건네줬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배에서 부글부글... 결국 열흘 만에 배탈이 뚝 그쳤긴 하는데 정말 아홉째 날 저녁은 어떤 생각마저 들었느냐 하면 팔미라에 온 그날 저녁 고통스럽게 하루를 보냈고 화장실 변기에서 배를 부여잡고 눈물까지 흘렸던 거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정말 이대로 한국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으니까. 원래 나는 여행지에서 물갈이를 잘 하지 않는데 이렇게 심하디 심하게 한 게 처음이라서, 무려 열흘 정도였잖아, 이렇게 해서 쪽 빠진 살이 이집트에서 술 먹다가 마구 살이 찌셨다네. 아무튼, 심한 물갈이 때는 어떤 약도 안 듣더라는 거... 저렇게 맛있는 음식점에서 둘 다 저걸 먹고 물갈이를 했으면 문제 있는 거 아냐? 그 순간을 생각하면 어우.......
두번째 이야기
터키 여행은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 그리고 사프란볼루까지 동행이 있어 혼자 떠난 여행임에도 외롭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카파도키아에서부터 나와 일정을 함께 했던 오라버니가 감기에 걸린 바람에 몇 날 며칠을 함께 있어도 겨울철이다 보니 호전될 기미가 안 보여 그는 한국행을 택했다. 2주간 늘 사람이 곁에 있다가 처음 이 Amasra라는 조그마한 항구 도시에서 혼자가 되니 그 외로움은 어찌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더라. 그 오라버니가 떠나면서 자기 생각 많이 날 거라고 했는데 역시 빙고! 너무 많이 났다. 저녁에 도착해 숙소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누군가의 도움(나중에 따로 포스팅 예정)으로 별장 같은 맨션을 구했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테라스 전경에 홀딱 반해서 내가 이런 곳에도 묵을 수 있구나 싶었는데.. 세상에 그럼 뭐하나, 겨울인데 뜨거운 물이 안 나오잖아. 그래서 찬물에 머리 감기 싫어서 꾸물꾸물대다가 결국 정오쯤 되어 겨우 나와서 밥을 먹고 PTT(우체국)에 볼 일이 있어 물건 파는 아주머니에게 조심스레 물어보던 중 지나가던 이 아주머니께서 자기를 무조건 따라오라는 제스추어를 취하신다. 인상도 워낙에 좋으셔서 웃으면서 졸래졸래 따라갔는데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데도 그날따라 내가 옷을 얇게 입어서 몸을 살짝 웅크리고 있었고(그게 좀 안 돼 보이셨나 보더라!) 터키 말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눈빛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느낌으로 해석해 봤을 때 '저 멀리 있는 것이 우리 집이고, 내가 걸칠 수 있는 옷을 주겠다. 그러니 우리 집에 잠깐 갈래?' 하고 물으시며 내 대답을 기다리시는 듯했다. 현지인의 첫 초대... 고민하고 말고 할 거리가 아니기에 바로 에벳(터키어로 Yes) 대답하고 아주머니와 웃으면서 걸어갔다. 걸어가고 있는 데 친해보이는 택시 운전기사께서 우리를 친히 아주머니 댁까지 데려다 주셨고 4층 아파트에 도착했다 두둥. 나보고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 하시고는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뭔가를 열심히 만드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피데(피자)로 배가 부른 상태이기는 하지만, 아주머니의 친절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맛있게 먹어야지 했다.
짜잔! 바로 이것이 터키의 일반 집에서 먹는 가정식.. 보기에도 살짝 느끼해 보이지 않나요? oily 한 음식이었죠. 여행 중에 누군가가 내게 친절을 베풀면 내가 아무리 배가 불러 있어도, 그 음식이 맛이 없어도 무조건 '맛있게 많이'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소화가 안 될지언정, 나중에 소화제 먹으면 되니까 일단은 진짜 최선을 다해 먹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먹기 시작했다. 붉은색 수프, 채소볶음, 과일 설탕 조림, 토마토 조림! 이럴 때를 대비해서 '엘라니제 사을륵' 이란 말을 배워두길 잘했다. 우리말로 '잘 먹었습니다' 라는 뜻. 이걸 다 먹고 나니 후식으로 과일도 주셨고 또 내가 추울까 봐 아주머니가 '카디건'도 주셨다. 그리고 역시 커피도 잔뜩 끓여주셨다는... 이렇게 시간 보내고 나니 날이 어두워져서 아주머니가 손수 숙소 근처까지 데려다 주셨고 나중에 먹으라고 '사과'까지 따로 챙겨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아주머니의 친절 덕분에 혼자인 것이 더는 외롭지 않아서 마음이 서서히 열렸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많이 먹었다. 빈속에 먹은 게 아니라 이미 피데로 배를 꽉 채운 상태에서 저 음식들을 해치웠고 거기에다 과일에 커피까지.. 기름진 음식들로만 속이 채워진 터라 아주머니와 헤어지고 숙소를 찾아 헤매는데 갑자기 배탈이 최고조에 달했다. 거사를 치러야 할 듯싶어서 눈에 보이는 슈퍼에 뛰어들어가 물과 휴지를 사고 숙소를 겨우 찾아서 한층 한층 오르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해서는 안 될 짓을 해버렸다. 긴박한 순간에서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가더라...... '열쇠로 문을 열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 시간 vs 반 층만 더 올라가 위층 복도에서 실례를 범하는 시간' 중 어떤 것이 지금 나에게 평화를 찾게 해줄 수 있을까 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다. 죄송합니다 -_-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문화시민으로서의 도리를 지킬 수 없을 만큼 너무 급했다, 아니 죽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일찍 떠나야 해서(아직 깜깜했고) 내가 저지른 초토화된 범죄의 현장(?)은 눈으로 확인을 안 해서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 그런 상황이 왔어도 나는 그렇게 했을 거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어우 부끄럽다... 쓰고 나니...
아무튼 기름진 음식은 정말 조심하세요. 두 번째 이야기는 저와 같은 경험 한 번쯤 없는 분이 어디 있을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요, 쿨럭. 참! 물갈이에는 정작 소용없는 몸에 해로운 약보다도 '미숫가루'를 뜨거운 물에 살살 녹여서 마시는 게 훨씬 속이 진정되고 잘 듣는데요. 이런 변(?)을 겪은 이후부터는 친구에게서 미숫가루 이야기를 듣고 미숫가루를 꼭 챙겨갑니다. 여행 떠나시는 분들! 지사제보다 '미숫가루' 하나하나 포장해서 나온 거 많으니까 꼭 챙겨가세요, 아니 챙겨가시면 저와 같은 일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합니까 후후.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미숫가루는 필수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