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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2008. 7. 1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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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로브 라이너 감독님

왜 이 영화를 이제서야 본 거야. 누가 지루하고 재미없다 한 거야?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완전히 생각나는 대로 말을 다 쏟아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카터와 에드워드, 두 노인네.. 정말 환상의 조합이고말고. 누가 그랬지, 옷깃만 스친 건 인연이 아니라고.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마지막 순간에 서로에게 최고의 시간을 선사해주기 위해 그동안 아껴 뒀었나 봐. 먼저 떠난 카터를 위해 추모사를 에드워드가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뭉클해서 눈물이 났고 '그립다'라는 말이 너무도 절절하게 와닿아서 영화를 보다가 배고파서 가방에 들어있던 시리얼바를 베어먹다 엉엉 하고 울어 버렸으니.. 두 사람이 그 장엄한 신의 소리를 내년 봄에 듣고서야 영화가 마무리 되나 했더니, 이런 결말 너무너무 좋다... 진짜 진짜.. 화장이냐 매장이냐 에서 두 사람이 투덜투덜 거릴 때도 난 웃겨서 혼났는데. 자기는 폐쇄 공포증이 있어서 내가 무덤 안에서 깼을 때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냐고, 벨이라도 달아야 하냐고 할 때 나는 정말 뒤로 넘어갔다. 이 두 노인네는 진정 삶의 연륜 더하기 환상의 콤비 덕분에 심각한 대화도 결국은 유쾌한 웃음으로 마무리짓게 만들어주니 정말 보는 내내 나는 킥킥 거리면서 웃었다. 웃는 것도 정말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진짜 배꼽잡을 정도의 폭소말고 저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 흐뭇해서 동화되어 저절로 웃음이 나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웃음. 난 진정 이런 웃음을 원했었다고.


얼마 안 남은 기간동안 저 모든 곳을 다 가려면 일단 돈이 많아야 하는 현실적 상황은 배제하고서라도 이 대화 자체는 정말이지 부러웠다. 내일은 카이로, 모레는 탄자니아, 그 다음 날은 요하네스버그... 이 얼마나 부러운 도시들이란 말인가. 저 리스트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는 정말 감동 그자체였고. 적어도 내 시선으로 봤을 때 이 영화는 유쾌함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한부 인생들의 삶의 재발견 측면에서만 봐도 유쾌한 시선덕분에 나는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 억지로 감동스럽게 몰고 가려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이 노장 배우의 천연덕스러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영화를 있는 그자체로 즐길 수가 있게 되어버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한부 관련 영화를 봐왔지만, 이거다 싶은 영화를 못 만나봤거든요. 공감하는 작품 한 번 만나볼 거라고(일단 병이 들어가면 공감이 안 되기에) 유명 작품들 여럿 봤지만, 역시 유쾌한 시선이냐 아니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느낌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아버렸다. 죽음은 생이 끝나는 게 아닌 또다른 생의 시작이고 결코 심각한데 무게중심을 둘 필요는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가느냐가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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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그곳이 대체 어떠한 곳이기에.. 카터가 어디서 본 구절을 이야기해 주는데 '세상의 지붕에 서 있으면 심오한 고요의 순간을 겪는다. 모든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산의 소리란 거 어떤 느낌일까? 안그래도 어제 여행쟁이 두 명을 만나 내가 가보지 못한 '파키스탄'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 셋 다, 여행 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더군다나 그 파키스칸의 훈자마을, 그곳은 많은 여행자들이 그곳을 향함에도 전혀 문명의 때가 묻지 않는, 그들은 늘 신이 주신 자연처럼, 그 자리 그대로 우리를 맞이해준다. 물론, 어떠한 여행자들이 그곳을 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감히 판단하자면, 훈자마을 이쪽 계열은 여행의 참맛을 아는 혹은 느껴보고 싶은 이라면 누가 가라고 일러주지 않아도 발길이 저절로 향하게 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숱한 여행자들이 가는데도 그곳은 늘 변함이 없다고 하니까. 장소는 달라도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분위기가 있는데, 확실히 훈자마을은 닮은 꼴 중에서도 뭔가 다른 그곳만의 아우라가 있다. 있을 때도 좋지만, 다른 무수한 여행지를 제쳐 두고서라도 일상에서 그곳을 간절히 그리워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은 훈자 마을이라 가능한 거다. 또 W양이 이야기한 에티오피아는 여행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나. 그 재미란 게, 말로 자세히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재미를 의미하는지 알기에 남다른 공기를 지녔다는 그곳이 또 무지 가고 싶어졌다. 확실히 여행기를 읽는 것보다(여행기를 그냥 끊어야겠다 오히려 더 답답해졌다 몇 권 안 읽었는데도) 그곳을 다녀온 나와 맞는 여행 스타일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훨씬 감흥이 남다르면서 가슴으로 기억하는 순간, 그곳은 내 다음 여행지인 거지뭐. 한 번도 자연을 벗삼은 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난 항상 작은 마을 위주로 돌고 돌아서 현지 사람들하고의 유대 이런 거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내 기쁨을 찾기 위한 그 장엄한 신의 소리를 듣기 위해 꼭 한 번 파키스탄에 가야겠구나 싶었다. 어쩐지 그 고요한 순간에 나를 위해, 내게만 들릴 그 어떤 신의 소리가 들릴 거라는 확신마저도 생긴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연 속에 한 번 파묻혀서 오래도록 지내보고 싶기도 하고. 터키라는 끈을 결코 놓을 수는 없겠지만, 여행 계획이 성사만 된다면 네팔, 파키스탄 이렇게 가보고 마지막에 터키를 짧게 다녀오면 되는 거니까. 여행쟁이들 덕분에 다음 여행만은 '자연 속으로'를 외쳐야 할 것만 같다.

+ 이 영화의 모토 '마지막 순간까지 아낌없이 즐겨라'를 너무도 충실하게 잘~ 반영한 멋지고도 유쾌한 영화. 재미난 영화보다 더 좋은 영화가 '유쾌한 시선을 담은'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재미는 한 순간이지만, 유쾌함은 오래도록 잔상에 남음은 물론 기억하게 만드니까.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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