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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2008. 11. 16. 02:20

요시노 이발관 (Yoshino's barber shop) , 나오코 오기가미 감독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이 가벼운 영화를 보면서 진지하게 '전통, 관습'의 현대적 의미 혹은 재해석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전통은 보존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극중 대사처럼 '전설'로서 남아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고찰. 이 마을의 전통은 사내 아이들이 모두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해야만 한다.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 따르고 있었지만, 새로운 아이가 전학 오게 되면서 서서히 '우리가 왜 지켜야만 하는가' 에 대해 반기를 들기 시작하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우리는 옛 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애도'를 금치 않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옛 것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이 강요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으로 숭배하고 따르기에는 너무도 현대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다. 폐쇄적인 사회라면 문제될 요소가 조금은 적겠지만. 다시 또 생각을 곱씹어보면 얼마전 아는 동생에게서 영국의 100년 전통의 택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 택시로 탈바꿈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방인인 내 시선으로 봤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아, 아쉽다, 그걸 왜 없애.. 난 아직 그걸 못 봤는데, 무려 100년 전통의 역사이건만, 그리 쉽게 허물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움만 연발해댔었는데 정작 그 택시를 운전하시는 기사분들은 새 택시의 기능이 좋아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아.... 그 분들도 정말 불편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 영화를 보고난 후에야 들더라. 그런 고충이 있을 거란 건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다른 나라 전통이니 이왕이면 무조건 보존해야 마땅하다는 선입견 속에서 그들을 봐았던 게다. 내가 직접적으로 불편해하고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으니.



전통의 굴레 속에 사람들을 가둬두는 건 옳은 처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으레 그렇게 해왔으니까, '마땅히 해야해' 라고 규정짓는 건,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욕구를 묵살해버리는, 전통을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상의 이유에 불과하다. 일률적인 요소의 강요야말로 강압적인 지배를 위한 가장 단순무식한 방법이니까. 중동의 모든 국가가 그러한 건 아니지만, 몇 개의 국가는 무조건적으로 여성들에게 '차도르(온 몸을 검은 색으로 도배해버리게 만드는 스카프)' 착용을 규정해두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공간이 아니고서는 자유로운 복장으로 있을 수가 없다. 오랜 시간동안 굳어진, 관습이란 것은 그리 쉽사리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 여성을 억압하는 그 차도르 규정을 예전보다는 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거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누구를 위한 관습인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전통, 그 자체는 좋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강요받고 있고 불편하다 느낀다면 더이상 우리가 지켜야만 할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일까. 전통이 사라져버린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전통을 버리자는 게 아니다. 전통 자체는 전통으로서 인정하되 그 다음은 각자에게 열린 결말처럼 맡겨두는 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닐까. 자유로운 가운데 지키고 싶은 사람은 지키고 아닌 사람은 아니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는 것. 전통이 가진 의미를 부정하는 게 아니니까. '인정한다, 그러나 따르고 싶지는 않다' 이런 의미로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격식에 얽매인 '제사'가 정말 단출하게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카모메 식당과 안경, 이 두 영화를 만든 '나오코 오기가미' 감독님의 처녀작을 드디어 보았다. 봐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보았는데, 영화의 재미와는 별도로 전통, 관습에 이런 저런 생각을 톡 던져 주실 줄은 몰랐단 말이지요. 꼬맹이들 나오는 영화는 늘 그렇듯 재밌었고 애기들 머리 모양이 어찌나 귀엽던지 (다들 똑같이 깎으니까) 어린 시절로 함께 돌아가 오랜만에 동심에 빠져드는 기분. 아무튼, 나는 감독님 너무너무너무 좋습니다!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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