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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 2009. 1. 22. 21:58




터키의 디야바키르에 막 도착한 시각은 어느덧 밤 10시가 넘어버렸고 제 아무리 정확한 론리플래닛의 지도라 할지라도 어두컴컴할 때에는 방향 감각을 상실해버리기때문에 어디로 갈지 몰라 두리번 거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빨간 옷을 입은 아저씨 (R이라고 하자)가 다가와서 어디 가냐고 물어본다. 숙소를 보여주며 여기로 갈 거에요 하니 자신이 그곳까지 데려다 줄 테니 자기와 같이 밥을 먹겠냐고 물어보네.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덜 한 나로서는 R의 외모가 끈적끈적한 중년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침 배도 고팠고- 흔쾌히 좋아요 하면서 따라나섰다. 초호화 레스토랑이었던 것이다. 입구의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직원들이 아주 정중하게 안내했고 그곳에 들어서니 아주 잘 차려입은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거다. 내가 들어선 순간, 동양의 한 여성이라 시선이 집중된 것도 있었겠지만, 이리 늦은 시각에 터키 현지인과 단둘이 고급 레스토랑에 밥을 먹으러 오는 나를 아주 의심어린 눈초리로 다들 쳐다보더라는 것. 와서는 안 될 곳을 와버렸나 싶었지만, 일단 왔으니 밥을 먹어야지. 음식은 정말 잘 나오더라. 공연까지 곁들여서 즐겼으니 이런 횡재 두 번 다시 못 할 듯 하다.


식사가 끝나고 숙소로 가면서 한참을 걸었는데, R이 나보고 노래를 불러달란다.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들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건지. 그래서 식사에 대한 답례는 해야할 듯 해서 열심히 부르고 또 부르고.... 박수 나올 때까지 불렀다. 헌데 말이야..... 걸어도 너무 많이 걷는다. 숙소가 외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건만, 자꾸만 으슥한 곳을 향해 걷고 있으니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내가 무슨 변을 당한다면 어느 누구도 구해줄 사람이 없는데... 하는 생각에 머릿속은 새하얘지면서 R에게 '여기, 정말 숙소가는 길 맞아요?' 물으니... 무조건 숙소로 가는 길이란다... 헉.... 도망칠 수도 없고.... 일단은 그래 믿어보자.... 그래 끙... 그런데 큰 대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어두 컴컴한 학교였다.


당혹, 난감, 불안... 어쩔 줄 몰라서 속으로는 완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내가 어찌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엄습. 그런데 날 해칠 사람이면 진작에 수상한 기미부터 보이지 않았을까 하고 그래 한 번 어찌되나 보자 이런 생각이었던 듯 싶다. 자물쇠로 잠긴 문을 열쇠로 열더니 문을 밀면서 나보고 들어오란다. 그랬더니 우리나라로 치면 '당직실' 같은 곳에 나를 안내한다. 아,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 여기에서 자라는 말이구나 싶었다, 나는! 그런데 갑자기 느끼한 어투로 '마~사~지?' 물어본다. 아악.... 아니, 내가 너한테 지금 이 무시무시한 시각에 마사지를 왜 받냐고.... 그래서 노노.... 하고서 난로 옆의 침대에 누웠다. R은 의자에 앉아서 TV를 보면서 계속 갸우뚱거리며 마사지~ 마사지 타령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겠느냐고. 밤새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그래서 뜬 눈으로 밤을 샜다.... 해가 뜨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와서 또 R을 따라갔다. R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사람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모 버스 회사 사장님이었다. 너무도 이른 시각에 그곳에 도착하니 그 버스 회사 직원이 '밤새 어디 있었어요?' 하고 물어서 당황 삐질삐질 죄를 지은 것도 아니건만..... 그리하여 R에게 인사하고 나는 숙소를 찾아갔다.



대체 무슨 정신이었던 걸까? 지금 와서 생각해도 간이 배밖에 나와도 너무 나왔구나 싶은 생각만 든다니까. 야심한 시각에 아무 의심없이 졸졸 따라가다니.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으면 대체 어쩔려고 말이지. 물론, 별 일이 없을 거라는 동물적 직감이 있기에 오픈 마인드를 하고서 대한 것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여행했던 나날 중에 가장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자꾸 '마사지'를 해준다 그랬을까? 음흉한 속셈이었는지 순수한 의도였는지 모르겠고나. 글로는 담담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아주 제대로 덜덜덜 떨고 있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또한 R의 호의를 오해한 건지도 모른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에 내 시선에서 바라보고 느낀 그대로를 썼으니.. 헌데 처음 내게 말을 걸었을 때부터 '나쁜 놈'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고 확신을 했었었다, 나는 말이지. 그놈의 '감'만 믿다가 큰 코 다칠 수도? 흐흐.




담부터는 '밤늦게는' 안 따라갈게요. 혼날 것을 대비해서 미리 선수치는 것임! 낮에는 열심히 따라가고 밤에만 안 따라가겠어요!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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