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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2009. 10. 23. 03:13



(중략) 그때 이후로 나는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왜 그런지는 나로서도 잘 알 수가 없다. 나를 끌어 당긴 것은 그곳 공기의 질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곳 공기는 그 어느 곳과도 다른 뭔가 특수한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부에 와 닿는 감촉도 냄새도 색깔도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지금까지 맡아왔던 그 어떤 공기와도 달랐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공기였다. 나는 그때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 엽서는 색이 바랜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그 공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일어난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그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었다) 몇 가지 일들을. 나는 그 후 많은 나라를 다녔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다른 공기를 맡아왔다. 하지만 불가사의한 터키의 공기는 그 어떤 다른 나라의 공기의 질과 달랐다. 어째서 터키의 공기가 그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나로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것은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분히 일종의 예감 같은 것이다. 예감은 그것이 구체화될 때만 설명할 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씩 그런 예감이 나타날 때가 있다. 그렇게 많이는 아니다. 그저 몇 번쯤.

만약 내가 다시 한 번 터키를 여행한다면, 그리고 어딘가 한 곳만 가야 한다면 나는 아마 흑해 연안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특별하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뭔가 새롭고 신기한 것을 본 것도 아니다. 아나톨리아 고원에 비하면 그곳에서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번 여행 중 이 지역에서 제일 느긋하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그곳은 온화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 터키 여행 에세이 '우천염천' 이다. 글이 출간된 지는 꽤 됐으나 작년 무렵에 사진을 첨부해서 재출간됐다고 해야 맞을 듯싶다. 참새가 그냥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 터키 사랑에 목매는 내가 터키 관련 에세이, 더군다나 하루키옹의 글을 어찌 그냥 넘기리. 솔직히 고백하면, 그리스 편은 보지도 않았다. 원래는 터키 편을 읽고 그리스 편을 보려 했는데, 터키에 대해 그가 늘어놓은 찬사에 매료되어 도무지 그리스 관련 글은 읽을 수가 없었달까. 터키 여행 관련 서적은 넘쳐난다. 정보제공용 글에서부터 에세이집까지. 하루키옹만의 감성을 담은 이 터키 에세이는, 특히 흑해지역에 대해 그가 털어놓은 이 고백은 뜨겁디 뜨겁다. 이렇게 뜨거운 느낌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감정의 싱크로율이 최고조임은 물론, 설사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라 하여도 마음을 뜨겁게, 아니 활활 타오르게 만든다. '터키만의 공기'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터키를 꿈꾸는 자, 사랑하는자, 그리워하는 자에게 있어 무한대의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이를 뛰어넘는 표현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 본다. 혹 하루키옹이 다시 터키를 가게 된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터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이미 감정적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에 제 아무리 터키에 관해 주절주절 읊어댄다 해도 성이 차지 않기 마련이다. 헌데, 이 책만은 달랐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뜨겁게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그는 진정으로 흑해 지역에 대한 사랑을 토로했다. 뜨겁게 흑해 지역을 사랑했고 지금도 너무나 그리워하는 나로서는 그의 뜨거운 고백을 한글자 한글자 읽어 내려가는 내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뜨거운 마음이 가슴으로 느껴졌으니까. 단순히 공감대 형성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글을 잘 썼다가 아니라 가슴으로 그의 글을 받아들였고 특별했던 만큼 눈물나게 고마웠다. 내가 생각하고 그가 생각한 흑해 지역에 대한 느낌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일치했다는 사실이다.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해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기뻤다.




터키 빵과 터키 홍차인 '차이'에 대해 말한 부분 역시 끄덕끄덕일 수밖에 없다. 하루키옹이 여행을 한 건 80년대, 내가 터키를 간 것은 2000년대. 2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터키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면인 민족성 그리고 그네들을 대표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터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란 부제도 잘 어울릴 법한 책이기도 하다. 사진으로 올린 곳은 흑해 지역 중 나의 가장 소중한 인연이 되었던 하티제 언니가 살고 있는 '아마시아' 라는 곳이다. 약간 유럽풍 내음이 나는 곳인데, 몇 날 며칠 강둑을 걸으며 산책하기도 좋고 론리 플래닛에 워킹 투어가 따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걷기에 참 좋은 소도시다. 나는 여기에 머물면서 터키출신 부인과 결혼하면서 이 곳에 정착하게 된 호주 출신 할아버지를 만났고 집에 초대되어 맛난 음식도 맛있게 먹었고 친척 모임에도 나를 데리고 가주셔서 뜻깊은 추억이 많이 어려 있는 곳이다. 그래서 흑해 지역을 생각하면 이 도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시 가게 된다 해도 여기에서 만난 인연들을 다시 보러 가고 싶을 정도로. 사진 스캔이 거의 안 된 관계로 또 스캔을 하면 그때 사진 올리면서 추억을 되새김질 해야겠지. 아무튼, 터키를 사랑하고자 하는 분, 사랑하는 분, 나처럼 그리워하는 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이를 뛰어넘은 책은 단언컨대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요. 저처럼 그리스 편은 패스해도 좋습니다 하하. 이 책의 비중은 '터키' 쪽에 실려 있으니까요.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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