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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2009. 12. 4. 13:09



Erin McCarley - Love, Save The Empty


재밌자고 본 것인데, 결국 나를 화나게 만든 영화의 결말이라니. 물론, 영화의 끝은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엔딩을 이루게끔 한 장본인은 바로 그녀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남자'란 족속들의 선택권에 의해 만들어진, 아니지 이끌어낸 결말인 거지. 그래서 심히 심기가 불편하다. 영화 개봉한 지가 꽤 됐으니 나를 불편하게 만든 몇몇 커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남자는 데이트 하고 싶으면, 데이트 신청을 해요. 내가 했어요?
여자들은 왜 그래요? 왜 자기 마음 속에서, 작은 것들을 확대시키고 특별한 의미로 바꿔요? 제정신이 아니에요.

이렇게 얘기했던 이기적인 인간이 그녀에게 뒤늦게 사랑에 빠지게 된 걸 깨닫고서는 한다는 말이 아주 가관이다. 남자의 때늦은 고백을 듣고서 여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말하길, 남자들이 사랑에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넘어가지 않는 여자가 없다면서요, 하며 버스 떠났어, 임마, 하고 말하는 순간에 그는 거침없는 키스를 퍼붓고. 여자는 '감격'해하며 세상의 일반적인 경우 중 자신이 '예외'였던 거군요 했던 건데, 말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받아치며 그 남자가 한다는 말은 '당신은 나의 예외야' 맙소사. 왜왜 연애의 시작은 남자에게 있는 건데. 그녀는 다른 남자와 멋진 데이트를 했고 그에게 마음도 있었던 말이지. 헌데,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뒤늦게 고백이랍시고 해대는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왜 한순간에 넘어갔느냐고. 저따위로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자식에게. 이 커플의 해피 엔딩의 열쇠는 그가 쥐고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난다.


난 당신을 정말 사랑해.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나를 위해서, 내가 행복해지려면, 당신이 행복해야 해. 나와 결혼해 주겠어?
이 프러포즈를 받는 그녀는 행복의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씁쓸했다. 왜냐, 이 남자는 7년을 사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란 것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고 - 물론, 오래 사귀었다고 해서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 결혼이란 것을 친구 사이에 우정 맹세를 따로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아껴주는데 지금 이렇게만 살면 되지 결혼을 꼭 해야 하냐는 자기만의 궤변에 빠진 그런 남자였던 거지. 그렇게 7년을 결혼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을 헤집어놓고서는 결국에는 잠깐의 이별 뒤에 멋진 프러포즈로 해피엔딩에 이른다. 둘이 사랑할 때는 모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에 빠져들었으니까. 그런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비율이 정확히 수치적으로 50 대 50으로 딱 떨어질 수가 없으니 조금이라도 그 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자가 약자가 된다는 거다. 진전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선택권은 바라는 자에게 결코 있지 않으니까. 약자에게 있어 그 관계가 지속되면서 행복해지는 길은 주도권을 쥔 자가 약자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줬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게 현실 아닐까.


여: 이 얘기 천천히 하기로 한 거 알아.
남: 하지만, 우리 그 얘길 나눌 준비가 거의 된 듯 해.

결혼한 커플이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저 대화도 마음에 안 든다. 여자는 아이를 갖고 싶어하고 남자는 아니다. 상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으니 더 갈구하는 사람은 상대의 손 끝에 모든 것이 달린 셈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상대의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 내가 너무 감정 과잉해서 이 모든 걸 판단하는 것 같지만, 결론은 똑같잖아. 약자는 이 관계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자신의 탓으로 모든 걸 돌린다. 사랑처럼 약자에게 손해가 되는 게임이 또 있을까. 사랑은 게임이 아니지만, 엄연히 약자와 강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룰이란 것이 있으니까. 약자는 강자에게 '사랑'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으니까 마음의 상처를 더욱 받게 되는 법. 현재 유지되고 있는 관계에서 뭔가를 더 갈구하는 입장이 되면 사랑이란 게임에서는 그 전세를 뒤집기가 힘들다. 그게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영화를 보면서 그간 사랑이란 것의 품은 달콤함 이면에 숨겨진 잔인함이란 것이 내게는 더 클로즈업 된 모양이다. 영화의 논리는 명쾌하다. 그에게서 연락이 없으면 그는 연락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것 이니까. 나역시 몇 년 전 엄청난 가슴 앓이로 맘고생을 할 때 너무 답답해서 아마존닷컴 1위에 빛나는 정말 킬링타임용 책을 구매한 적도 있다. 그 책 이름은 '파울, 도대체 니가 뭔데?' 여기 영화에서의 상황과 똑같은 내용이 전개되고 그때는 저 책이 없었으므로 답답함이 한계치가 넘어 저 책을 세상에나 돈 주고 샀다는 거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고 답답함이 해소 되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올시다. 동병상련의 심정이 느껴졌지만, 그게 다라는 것. 연락 오기 만을 기다리면서 매 시간 전화기만 쳐다보고 전화가 혹 안 터지는 거 아닌가 하고 내 폰에 내가 전화를 걸어보고 진동으로 되어 있으면 다시 소리로 바꾸고 이런 짓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알 거다. 이건 정말, 사람 피 말리게 만드는 짓.


내가 말하려는 건, 한 남자가 내게 전화주지 않을 때, 그가 전화 받을 때까지 15분 마다 전화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가 고개를 숙여 내 번호를 본다면 저를 싸이코나 뭐, 그런 걸로 볼 거예요. 저는 멀쩡한데 말이죠.
이 대사에서 엄청난 폭소를 해버렸다. 발신 번호 관련 이야기 인터뷰하는 씬이었는데, 그 답답한 심정을 알기 때문에. 정말 휴대폰 서비스에 발신 번호가 제공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그 기능의 편리함이 좋으면서도 때론 누구에게 전화가 오는지 알기 때문에 그걸 역이용하기도 하고 더 좋아하기도 하고. 정말 발신 번호 제공이 되지 않았을 때도 우리는 잘 살았는데 말이지.






+ 여러 문제로 머릿 속이 복잡할 때 봐서 그런지, 감정 과잉이 최고치다. 수습 불가능. 가볍게 보고 넘기면 될 걸, 뭘 그리 많은 말을 쏟아내었는지 원.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사랑' 관련해 심사가 배배 꼬여버린 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웁. 그래도 평소 관심있게 지켜본 여배우들이 총출동해준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스칼렛 요한슨은 바로셀로나 영화의 연장선에 있고 드류 배리모어는 언제봐도 참 상큼하고 발랄하단 말야.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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