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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2010. 2. 10. 03:59

강예원, 그녀만 예뻤다...


이연실 - 찔레꽃


감동적인 영화를 접하고나면 나도 사람인지라 좋은 소리만 늘어놓고 싶다. 허나, 엔딩 10여 분을 남기고 펼쳐지는 황당하고도 어이없는 이야기 진행에 솔직히 말해 홀딱 깨더라. 그 순간부터 영화에 도취돼 밀착되어버린 감동의 감정 덩어리는 순식간에 냉각되었고 싸늘함만이 남았다. 감동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관객들 눈물 쥐어짜내기 위해, 말 그대로 쳐울게 하려고 온갖 무리수를 두는 것은 틀려 먹었다. 그렇다고 현실성이 있어야만 감동받는 것도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하는 보편적인 정서로 납득만 된다면 무슨 수로 이야기를 지어내든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다. 과욕은 화를 자초한다. 감독이 혼자 너무 내달리셨다. 관객들 눈물 콧물 쏙 빼는 데만 혈안이 되셔서 말이 절대 안 되는, 될 수가 없는, 당치도 않은 이야기 하나를 뜬금없이 갖다 붙여서는 마음껏 쳐울어보라고 생쑈를 하시더만.


내 감정이 메말랐다고 욕을 해도 좋다. 영화 보면서 화가 났던 점에 대해서는 좀 속시원하게 말하고 넘어가야겠으니까. 여자 재소자들의 저마다 가진 사연들을 두루 알려주면서 죄는 지었지만,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니 사람 마음이 짠해지긴 하더라. 게다가 감옥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되어도 18개월까지만 함께 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던 사연도 모성애를 자극하니 어찌 안 슬플까. 그리고 즐겁고 유쾌하면서 감동적이었던 합창단 이야기..... 여기까지는 감동 코드를 적절히 잘 조합하면서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사형 집행' 이다. 왜 굳이 사형을 집행 해야 했느냐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몇 십 년만에 흉악범의 사형 집행이 다시 시행되는 분위기였고 여자 교도소에도 사형 집행이 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사형 집행이 보편화 된 것도 아니고 시범 케이스로 하는 것 뿐인데, 그런 사례라면 응당 죄질이 나쁜 살인마가 우선 순위에 들 것이고 그런 가운데 복역하는 내내 교화되어 모범수 정도 되면 굳이 그런 사람에게 사형은 불가한 것 아닌가. 영화는 기어코 합창단을 성공적으로 이끈, 별 무리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 나문희씨를 끝끝내 사형대로 끌고 가더라. 미화의 미덕을 어찌나 중요시하게 생각하시는지 그 장면 마저도 참 아름답게 마무리를 하셨더만. 그런 과도한 설정을 해야 관객들 눈물샘을 제대로 자극한다고 생각했나보더라. 나도 감독이 설치해놓은 울음덫에 걸려 정신없이 허우적거렸지만, 그 문제의 장면부터는 잠자고 있던 이성이 눈을 번쩍 떠서는 비웃음만 보냈다.


어느 정도 그럴싸해야 이해나 하지, 감동적인 이야기로 이끌어 내기 위해 작정하고 만든 영화니까 이해하자고 아무리 타협해도 그게 잘 안 된다. 그런 점이 더 화가 나고 괘씸하다. 2010년이라는 이 시대에 아직도 이런 부류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찬사를 받는 것도 열이 받고 감동 코드를 단순 무식하게 작위적으로 연출한 것들로만 꽉 채워서 '이렇게까지 만들었는데 니네가 어찌 안 울고 배겨?' 하는 따위도 신물이 난다. 영화를 되새김질하면 할수록 더욱. '감동'이라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우러나오게끔 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극적일 수 없는 사건들의 구성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해 연방 움찔대서 훌쩍거리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섬세한 장치로 보다 디테일하게 어루만져줘야 한다. 보편적인 정서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작업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영화로 찬사를 받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물샘만 자극하게 하는 데만 주력해 아직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부류의 신파가 먹힌다고 생각한다는 자체, 그 썩어빠짐에 지탄을 보내야만 하는 영화다. 쳐울게만 한다고 그게 어디 감동적인 영화랴? 모로 가도 울게만 하면 된다? 너무도 극적이기만한 작위적인 요소의 과도함으로 되려 역효과를 제대로 낸 이 영화에 나는 별점을 단 하나도 줄 수 없다. 전형적인 대한민국식 감동 코드가 아직도 이따위고 이런 것에 사람들은 여전히 감동을 받고 있는 점에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감동을 받은 사람도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는 결단코 아니다. 다만, 강대규 감독의 눈에 뻔히 보이는 그런 괘씸함이 나를 자꾸만 화나게 하는 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대한민국 영화의 현주소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너무 오바하는 것임을 알지만, 신파도 적절히 배합하면 훌륭한 영화로 탄생될 수 있는데, 간혹 눈에 띄는 미화된 고질적인 신파는 마치 관객을 우롱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관객들 두 눈을 멀게 만들어서 이성을 반강제적으로 억제시키고 그저 눈물을 훔치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라 칭송듣게끔 하고 자신들은 마치 그걸 예견한양 흡족해하며 돌아가는 모양새. 대한민국표 감동 영화의 틀이 정형화된 채로 고여있는 걸 원치 않는다. 고인 물은 썩기밖에 더 하랴.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가뭄에 콩나듯 이런 작품을 한 번씩 접할 때마다 들끓는 화를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이토록 말을 장황하게 하는 건, 근 몇 년간 본 무늬가 감동 영화였던 것 중에 하모니가 가장 최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연출의 정도가 볼썽사나웠고 제대로 가관이어서 더 그런 거다. 내가 흘린 눈물이 이렇게 구차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내면에 울려퍼지는 진실된 감동 따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눈물만 이끌어내기 위해 억지스러움으로 도배되어 구색맞춤에 급급했기에 그 눈물의 소비마저도 아깝더라. 이 영화를 감동적으로 봤던 분들에게는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를.....


하모니를 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 누군가의 우는 모습이 보고싶다면 혹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무조건 같이 가라. 친구 두 놈, 훌쩍거리며 우는 모습을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볼 수가 있었겠냐고. 영화 끝나고 불만족스러움에 투덜거리긴 했지만, 둘 다 울고난 직후라 코 끝은 빨갛고 눈은 촉촉한 걸 보고 한참을 혼자서 정신나간 것처럼 웃어제꼈다. 친구들의 울고 난 후의 모습을 보는 재미를 톡톡히 안겨주긴 하더라.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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