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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 2011/08/30 04:22

구라자트 주에서 가장 큰 도시 '암나바드'에서는 도착하자마자 홍역을 치렀다. 그래, 이런 일이 없다면, 여행이 아닌 거지. 이놈아, 방을 말 그대로 쉐어하자는 의미지, 너랑 섹스하자는 게 아니라고! 바라나시에서 보빨(1박 후) 인도르에서 암나바드로 와야 했는데, 버스로 이동하니 2~3시간에 한 번씩 휴게소 들를 때마다 담배 피우고 짜이 마시고 반복. 모든 인도인들의 눈길은 나에게로 초집중 되는 건 어쩔수 없다고 쳐도, 특정 인도인 남정네 한 분께서 나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도착할 무렵 마지막 휴게소에서 말을 건다. 자기도 비즈니스 차원에서 암나바드 가는데 블라블라~ 언뜻 보기에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아침 일찍 도착하니 숙소 잡는데 현지인이니까 도와줄 것 같았거든. 자기도 숙소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 했으니까. 

오전 6시 무렵 암나바드에 당도했고 숙소를 그놈과 함께 찾기로 한다. 난 론리에 소개된 숙소를 보여줬지만, 자기에게 맡기라며 오토릭샤들에게 뭐라뭐라 이야기하네? 위치 파악 안 되는 이름 모를 호텔에 도착해서 나보고 방을 둘러보란다. 응? 화장실도 딸려있고 침대는 하나 (잉?)에 티비도 있고 아무리 봐도 내가 지불하고 하룻밤을 자기에는 너무 럭셔리해. 그래봤자 10불도 안하지만, 난 2~3불 인생이니까. 5불이상은 죽어도 못 줘 여행객인 걸 어쩌라고. 이놈의 자식이 자기가 계산을 한다네? 뭐지? 그래서 일단 여권 맡기고 불안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나, 지금 이 침대에서 오늘 밤 이놈과 같이 자야 하는 거? 엥? 이건 아닌데? 급 피로감에 일단 상황 파악이 덜 되어, 난 일단 씻고 오겠다고 이야기한 다음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화장실로 들어간다.  젠장, 왜 화장실 문까지 제대로 안 잠기고 난리야..... 


샤워를 한참 하고 있는데, 헉, 이놈의 자식이 들어오려고 한다.  그놈은 상반신도 버젓이 탈의했다 헉. 미친놈. 젖먹던 힘을 다해 막았다 -_- 그때부터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 멍충이같으니라고. 이놈은 내가 숙소 같이 잡자는 말이 '방을 같이 쓰고 오늘 너랑 나랑 좋은 밤을 보내자' 이런 걸로 받아들인 거다. 아오 미친놈. 그러니 얘가 제안한 거에 내가 오케이를 하니 놀래면서 반가워했던 거지. 난 그게 절대 아니라고, 이자식아.  일단 재빨리 샤워하고 머리 감고 옷을 입어야겠더라.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샤워를 다 끝내고 나갔더니, 이놈이 걱정말고 편하게 있으란다. 그러면서 헐 불도 다 껐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지 하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자칫 잘못 하다가 여기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게 생겼잖아. 더군다나 상대는 남자다. 힘으로 제압하면, 내가 여기에서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아무도 모르지. 그렇다고 내가 무작정 가겠다고 하면, 내 신변의 안전이 걱정되는 상황. 그래서 연기 하기 시작했다.  포토 카피하겠다고 여권을 맡겼던 게 생각이 나서, '난 여권 오래 맡겨두면 불안하니까, 니가 리센션에 내려가서 좀 대신 받아달라'고 부드러운 어조로 부탁했다.  계속 이야기를 하니 알았다고 문 꼭대기 잠금을 풀더니 내려간다.  섣불리 가겠다고 했으면 진짜 큰일날 뻔했네. 세로 잠금 문걸이가 내 키는 닿지도 않는 곳에 있었으니. 확실히 내려간 걸 확인한 다음에 재빨리 배낭을 메고 뛰쳐나왔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그놈과 마주쳤고 난 지금 다른 호텔 가겠다고 무시하고 내려왔다. 욕을 한 바가지로 해줬어야 했는데, 일단 나는 여기를 무사히 빠져나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리셉션 애가 포토 카피 하려면 시간 걸린다고 여권 안 준다는 걸,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나, 여기 안 묵을 거니까, 빨리 달라고 난리 난리를 쳤다.  그랬더니 쭈삣쭈삣하면서 여권 받고 나는 무사히 빠져 나와서 한숨 돌렸다... 




연기를 안 하고 막무가내로 가겠다고 했으면 걔는 절대 문 안 열어줬을 거야 으흑. 가끔 이렇게 황망한 경우를 겪을 때마다 여행 중에 너무 오픈 마인드로 있지 말아야지 하는데, 사람 천성이 그리 쉽게 바뀌느냔 말이지. 현지인에 대한 경계심 '제로'인 나로서는 그들과 가까이 하면 좋은 일이 더 많으니까, 애써 이런 일은 무시하려고 애쓴다. 어찌됐든 무사히 빠져나오고 별 탈 없었으면 된 거잖아.  혹시나 그놈이 따라나올까봐 빠른 걸음으로 도망친 그때를 생각하면.... 

숙소 찾기 전에 한숨 돌리려 근처 짜이파는 가게에서 짜이 마시고 아침의 악몽은 잊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아저씨가 워낙에 웃음 많고 친절하셔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구자라트에 입성한 신고식 한 번 제대로 했다. 옛말 틀린 말 없다니까요.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침착하면 됩니다. 물론, 이같은 경우가 안 생기는 것이 가장 좋지만, 저의 황망한 에피소드에서 얻어갈 교훈은 침착, 또 침착하면 잘 헤쳐나갈 수 있어요.  여기에서 몇몇은 의문을 가지겠죠? 아니, 얘는 뭘 믿고 그놈이랑 방에까지 들어갔으며, 버젓이 겁을 상실하고 샤워까지 하고 있느냐? 상황 파악이 아무리 안 됐어도 그렇지. 네, 맞아요. 극심한 피로에다 여행자들끼리는 방을 잘 쉐어하니까, 도미토리 개념에 입각했고 현지인을 여행자라고 생각한 거죠. 여행자 마인드가 있겠거니 하고.  돌아가는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구나 느껴질 무렵 딴 숙소를 잡을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너무 몸이 더러워서 일단 몸부터 씻고 싶었어요. 그것이 나의 변입니다. 더러운 몸뚱아리부터 씻은 다음 차근차근 상황 해결하자 뭐 이런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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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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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박또 2011/08/30 13: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글은 개그인데 내용은 서스펜스 스릴러! :-)
    흥미만점 여행이 되려는 밑거름이었다고 믿습니다. 건강히 돌아오셨으니 다행이라는 위로를 전합니다. 흐흐

    • BlogIcon 딸뿡 2011/11/04 13:43  address  modify / delete

      그렇게 느끼셨다니 여행기 쓴 사람 마음은 뿌듯뿌듯. 괜한 글 올려서 '저 나라 위험한 나라인가봐' 이런 인식 주는 건 싫거든요. 우리나라가 젤 위험한데~! 첫 여행기부터 너무 큰 걸 터트려서 잔재미를 못 드릴 듯 흑흑.

  2. 주인 2011/08/30 20:5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분명히 등골이 오싹하고 심각한 상황인데, 우째 저는 재미있게 읽힐까요 -.-;;;
    딸기님 터키여행기도 몇편 뒤적뒤적했어요. ㅎㅎ 인도얘기 또 해주세요~

    • BlogIcon 딸뿡 2011/11/04 13:44  address  modify / delete

      이히히 흥미진진하셨다니 뿌듯하옵니다. 터키 여행기는 재밌으셨나 모르겠어요~!!!!

  3. 두부님 2011/09/03 12:3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다알고 있는 얘기인데도 글로 읽는건 또다른 재미가 있네,
    맞다... 심각한 상황인데 웃음이 나오네. ^^
    여행 애피소드 종종 올려줘.

    • BlogIcon 딸뿡 2011/11/04 13:45  address  modify / delete

      두부야. 초장에 너무 큰 걸 터트렸어 엉엉. 잔잔한 에피는 여기에 비할 바가 못 되고~! 하지만 인도 기억이 흐릿해져 가기 전에 언능언능 올리겠나이다. 이게 몇 만년 만에 다는 댓글이더냐 크크.

  4. BlogIcon M'ya 2011/09/04 14:5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뭔지 모를 '홀로 여행'을 계획해 볼까 했는데,,,
    이 글을 읽고 흡!!!
    조심, 또 조심 해야겠구나.
    무사했으니 이렇게 글로 적었겠지만, 정말 그래도 앞으로도 조심!!

  5. BlogIcon liontamer 2011/09/19 14: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딸뿡님 진짜 오랜만에 들렀어요 잘 지내세요?
    우와, 이 상황은 상상만 해도 오싹해요. 저는 겁이 많아서 숙소가 세팅되어 있지 않은 곳은 절대 못가요 ㅋㅋ
    오랜 옛날 러시아 기숙사 있을 때 비싼 기숙사에 살던 영국(...으로 추정) 남자애들이 마약하러 오라고 꼬시던 게 갑자기 생각났어요 ㅋㅋ

  6. 2011/09/24 17:0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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