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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 2008. 6. 24.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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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뿌옇게 보이지만, 능선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 바로 '아라랏 산' 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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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저멀리 보이는 것이 이삭파샤궁전, 한참을 돌아가야 나오더라는.. 살짝 후회했다, 택시 탈걸 하고..


도베야짓의 명성은 '이삭 파샤 궁전'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실상은 '정말 나도 그런 경험 할까?' 하는 몹쓸 호기심이 발동해서 꼭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었다. 무섭기도 하고 두려워서 그 숙소를 안 갔어야 했는데 이 호기심이란 게 정말 제어가 안 되더구나. 위험천만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전이라 그 이야기를 누구를 통해 들었는지는 가물가물하긴 하는데 사건이 일어난 전말은 이러하다. A라는 친구가(물론 여자다!) 도베야짓에 머물게 됐고 영어도 꽤 능숙하게 구사하는 녀석이라 숙소 사람들과도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하게 지냈는데.. 바야흐로 시간은 자정이 넘었다. 한참 자고 있을 무렵 자신의 방, 문을 누군가 미친 듯이 두들긴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두드릴 이유가 없잖아. 그렇기에 쉽게 열어줄 수도 없고.. 누구냐로 물어도 대답은 하지 않고 그럴수록 문은 더욱 부서질 정도로 두드리니 그 순간 얼마나 겁이 났을까. 겨울이라 숙소에 있는 건 자신뿐인데. 분명히 이렇게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린다는 건 일단 숙소 사람일 확률이 높아서 행여나 열쇠로 문을 열까 봐 손잡이까지 꽉 쥐면서 맥가이버 칼도 옆에 들고 계속 덜덜 떨면서 몇 시간을 그랬었단다. 내가 동부 지역을 간다는 걸 알고 내게 자신이 그런 끔찍한 경험을 했으니 그 숙소만큼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에르주름 호텔' 이렇게 가르쳐줬건만.. 그놈들 면상이 어찌 생겼나 구경이나 하자 싶어서 다른 숙소들은 제쳐놓고 제일 먼저 이른 아침에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에르주름 호텔부터 찾아가게 된 거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던 게지요, 겁을 상실했다는. 일단 숙소에서 일하는 애들도 교대 근무란 걸 하기 때문에 그 미친놈이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는 없고 열심히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일단 아침에 본 그 능글능글하게 생긴 놈이 잘해주긴 하더라고요. 배고픈 것을 어떻게 알고 날 보자마자 건너편 식당으로 데려가서 이것저것 맛있는 걸 사먹이고.. 주는 걸 마다하지 않기에 넙죽 잘 먹었다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혼자 단정 짓고.... 먹을 거에 너무 약하시다 어휴... 그래서 마음을 푹 놓아버림..

자자, 밤이 되었습니다. 과연 어찌 되었을까요? 솔직히 이야기해 좀 무섭기도 했다, 나도 사람이니까. 진짜 겨울철 터키 동부 여행은 인적이 드물기에, 여행객이 어쩜 그리도 없는지... 내가 그곳을 지나칠 때만 없는 건지, 나를 피해 다들 어디로 가버리는 건지. 동행자 복은 거의 박복한 수준이라 뭐 애초부터 포기하긴 했지만,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게 문제였다. 역시 으슥한 시간에 접어드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데 너무도 섬뜩해서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온 것이지 또 그런 일을 당하리라곤 생각을 못 했으니까요. 그 친구처럼 오랜 시간을 두드린 건 아닌데 소리가 거세지긴 하더라고요. 십 여분 정도 미친 듯이 두드린 통에 그날 저 역시 밤을 꼴딱 새버렸다는...  잠시 여기 온 걸 후회하기도 했는데, 다음 날 다른 도시로 옮겨가자 마자 바로 그 친구에게 메일로 '야, 나도 당했어!' 하고 제대로 공감 포인트를 날려주셨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났던 A의 사건을 아는 사람들에게도 진짜 그 몹쓸 숙소에 갔었다니까, 미쳤구나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미친 거 맞는 거 같습니다. 무슨 일 당했으면 어쩌려고... 하지만, 또 그 상황이 와도 또 갔을 거라고요. 그 작자들 면상은 봐야 될 거 아닙니까. 비록 누군지는 모르지만. 추측건대, 만취한 상태로 동양 여성여행객이 자기네들 숙소에 묵고 있으니 어찌 한 번 해볼 심사로 무시무시한 방문 두드리기를 한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겨울철에 여성 여행객은 도베야짓의 이 호텔 비추입니다. 절대 가지 마십시오. 몹쓸 호기심에 가다가는 골로 갈 수 있다는.. 그러면서 저는 왜 갔을까요? 이 호기심은 정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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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랏산을 뒤로 한, 멋진 '이삭파샤 궁전' 입니다 눈과 함께라 더 멋졌죠!

숙소에서 5km 떨어진 곳이라기에 산보나 하자 싶어 천천히 걸어갔었는데.. 거리는 꽤 돼서 속도를 내지 않고 걷다 보니 궁전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는 데 2시간여 걸렸다. 오르는 풍경이 또 워낙에 멋지다 보니 가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는데.. 시내에서 조금만 걷다 보면 바로 군부대가 나와서 움찔움찔하기도 하고, 또 잘만 하면 어린 학생들을 만날 수도 있어서 좋고, 나는 못 가봤는데, 걷다 보면 초등학교가 나온다고 하더라. 아는 오라버니는 학교에 가서 애들과 한참을 놀았다고 하니까.. 또 워낙에 양을 방목하기 좋은 곳이라 양치기 할아버지도 만날 수 있고 여러모로 걷는 시간이 행복했던 공간.. 저 이삭파샤 궁전도 얼마나 그 위용이 멋지냔 말이다. 눈과 너무도 잘 어울렸던 곳.. 도베야짓 여기는 정말 한적한 시골 같은 곳인데.. 걷는 재미가 쏠쏠해서 심심하지는 않더라. 갈 때는 걸어갔고 올 때는 문을 닫을 시간에 가까웠던 터라 문지기 아저씨들이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셔서 저기 보이는 밴을 타고 시내로 올 수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도베야짓이지만, 밤중에 있었던 그 사건 덕분에 이곳 하면 그 기억밖에 안 떠오른다. 솔직히 '거기 가지 마세요' 하고 공식적인 말은 하지만, 기회 되면 한 번 가보라고, 그놈들 면상 보라고 강력추천한다는... 무미건조한 여행에 가끔 그런 강력한 사건이 발생하면 다시 의욕을 불끈하게 되니까. 문을 열 심사였으면 열쇠부터 만졌겠죠,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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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것도 올려줘야죠? 이삭파샤 궁전 안에 들어오면 바로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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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트반에 놀러오라며 주소까지 적어줬는데 못 가서 죄송해요. 두 분 다시 뵙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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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귀여운 꼬맹이! 예쁜 애는 정말 예쁜 짓만 하더라니깐. 엄마 아빠를 쏙 빼닮았어, 이쁜 구석만!

문지기 아저씨의 과도한 친절로(겨울철이라 사람이 없는 게 죄라면 죄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택시나 밴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오전부터 다들 보고 내려갔으니까) 불편함을 호소할 무렵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오셨다. 드디어 다행이다 싶어서 '내게 관심 좀 보여주세요' 하는 심사로 꼬맹이가 너무도 귀엽기에 웃으면서 귀여워해주니.. 잘생기신 아저씨께서(정말 깔끔하게 생기셨잖아, 인상도 좋고, 물론 아주머니도) 영어를 하시는지라 이것저것 이야기하면서 함께 궁전 내부를 돌아보게 됐다. 다 보고 나니 식사할 건데 같이 하겠느냐 해서 거절할 필요가 뭐 있을까. 그래서 '아 감사합니다' 하고 기꺼이 받아들였고 식사하면서 더 친해지게 됐다. 요 꼬맹이가 나를 잘 따라서 더욱 귀여워해 줬었다. 다시 사진을 봐도 이분들과 그곳에서 다시 만났어야 했는데.. 요 꼬맹이 잘 크고 있나 몰라. 지금은 더 잘생겨졌을 텐데. 아버지를 닮았을 테니 말이다. 또 사진을 보면 아저씨가 가정적인 성격이어서 꼬맹이에게 직접 음식을 먹여주면서 사랑을 듬뿍 주시더라니까. 자상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던 아저씨..


아침 포스팅이라니.. 그냥 30일까지는 유로2008 흐름대로 살아주기로 했다. 30일 그날은 꼴딱 밤을 새고...... 원래 리듬으로 맞추고... 그리고 설마 이 사건 하나로 '터키는 위험하구나' 하고 단정지어 버리는 건 아니시겠죠? 간혹 이런 사건들만 보고서는 '생각보다 위험하군요, 여자 혼자는 안 되겠어요' 이러한 확대 해석으로까지 이어지는 분들이 계셔서 노파심에 이러한 건 있을까 말까한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 멀리 내다 보시고 그저 재미난 에피소드로 봐주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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