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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 2008. 8. 1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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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얼굴이 공개되면 큰일 나려나? 흑백이니 괜찮겠지? 그리고 아랍 패션을 하고 있으니 알아보는 이, 없을 거야. 그렇고 말고. 당연히 서로 일본인일 거라 생각하고서 게스트 하우스 소파에서 부딪쳤을 때도 눈인사 하며 단지 'Hi~' 라는 말만 건넸을 뿐인데... 그 특유의 억양에서 '앗, 저 사람 한국인이야' 하고 알아채버렸다. 인사가 끝나기도 무섭게 '한국인이죠?' 외치고선 서로 알아봤으니까. 이 오라버니께서 '이라크'까지 다녀온 덕분에 나는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가 있었고 사진 찍기 재미들린 나를 위해 아랍 패션쇼까지 흔쾌히 열어줬다. 전체 의상이 다 나오지는 않았는데 이라크에서 전통 의상 비스무리한 건데 저 옷을 입고서 아랍왕자와 같은 포스를 뽐내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웃겨서 한참을 둘이서 깔깔대며 잘 놀았었다. 그리고 이 패션이 너무도 잘 어울려서 마구 박수를 보내줬었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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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담고 있는 의미를 나 혼자만 알고 있어서 일까? 많고 많은 사진 중에 유독 이 사진을 볼 때면 왠지 모를 쓸쓸한 마음부터 든다. 본래는 다 마신 커피잔을 찍기 위함이었는데 로모 특성상 조준 실패로 약간은 낡은 의자, FM2 카메라, 다 마셔버린 커피잔, 오래되어 보이는 테이블... 그리고 내 신체부위까지 고스란히 나와주셨다. 이 엉성한 사진이 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든다. 사진 속에 여러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런가 봐.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지극히 주관적인 내 마음이 투영된 사진.... 그 날의 내 느낌....

사실 그랬다. 이 오라버니는 오전 10시에 다마스커스행 버스를 타느라 일찍 서둘러 나가야 했고 한창 자야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에서 만난 내 인연이었으므로 (의무감이었다기보다) 내가 원했으니까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돌아온 거다. 전날 맥주를 엄청 마시고 잔 탓에 얼굴은 상상초월로 부어있었음에도 마지막 모습을 보겠다는 일념하나로 오손도손 차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가는 모습을 보고서는 숙소로 돌아왔는데.. 또 다른 일행이었던 오라버니가 내게 한 마디를 던진다. '배웅까지 왜 가냐? 애도 아닌데' 이 비아냥 되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여행하다 보면 사람에게서 의외로 상처도 많이 받는데... 이 날의 그 말이 내게는 너무 깊이 박혔다...

미얀마 여행때도 일주일 정도를 함께 여행하다 서로의 여정이 달라 내가 먼저 밤차를 타고 떠날 시간이 다가왔는데... 안녕하기 십 분 전쯤, (막판에는 안 좋은 감정이 난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함께 여행 잘 했으니 그의 방으로 가서 굿바이 인사 덕담 정도를 나눌 계획이었는데 그는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네. 나는 십 분 뒤면 출발인데..... 어이는 없었지만, 몇 마디를 나누고 그와 함께 내려와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그의 말은 참 가관이다. '잘 가라' 끝.............. 대조적으로 나와 이제 일행이 될 일본인 친구는 동행이었던 호주 친구와 포옹을 하며 나중에 연락하라고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정신없이 나누는데 그는 그 말이 끝이었다. 그러고는 내가 가는 걸 보기도 전에 먼저 올라가 버린다. 세상에......... 그 때 사실 충격 먹어서 밤 기차 안에서 안 되는 영어로 무지 열변을 토했다. 이건 여행 기본 마인드가 안 되어 있는 거라고. 사람이 어떻게 그러느냐고. 인정머리라고는 찾아보려해야 찾을 수 없는 나쁜 XX 이러면서......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여행동지였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정도로 최악은 아니었다. 나라서 좋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여행 후 그의 홈페이지에서 가보니.. 자신은 좀 더 모험하길 원했기 때문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 미지의 곳을 가야만 했다 어쩌구 저쩌구... 깜냥이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던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의 다음 행보의 이유를 자기 마음대로 판단 내렸다는 거. 딸뿡은 이미 만달레이에 지쳤는지 2일 동안 기다리는 건 무리라며 오늘 바간으로 간다고 한다 vs 자신은 2일을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이 있지만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이렇게 써놓은 거 보고 웃겨서 말도 안 나오더라. 비루한 인간 같으니라고. 덕지덕지 오만으로 가득찬.......

물론 내가 정에 죽고 사는 부류는 아니다만, 적어도 함께 여행하는 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행동은 필요하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당연히 나와 좋은 시간을 보냈던 이가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면.. 내가 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까지도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주고 갈 수도 있는 거고... 함께 한 시간이 길든 짧든 '헤어짐'은 어쩐지 두고두고 아쉽기 마련이잖아. 인연에 연연한다 하면 별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나와 함께 해줬던 그 시간이 소중했던 만큼 그 상대에게 그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역으로 해석하면 소중하지 않으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아니고.. 잘가라 한 마디만 던지고 먼저 올라가 버린 그 몹쓸 종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도, 이해도 되지 않는... 그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내가 형편없었다고 해도. 기차역까지 누가 마중을 나와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가는 뒷모습까지는 지켜봐줄 수 있는 거였잖아. 숙소 앞에서... 몇 분도 아니지, 몇 초만 더 있다가 올라가도 됐을 걸.. 지난 여행을 다 떠올려봐도 그렇게 마인드가 글러먹은 놈은 처음 봤다. 본인은 정작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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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중에도.. 나와 동행했던 이가 다음 여정을 위해 떠나야 한다면 서로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소소한 파티'를 열 거고 다음 날은 그 시간이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내가 따라갈 수 있는 데까지는 무조건 배웅해 줄거다. 그게 내 인연을 대하는 방식이고 나는 이게 옳다고 믿으니까. 그걸 굳이 비아냥댈 필요는 없다는 거지. 물론 누구에게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마음이 통했으면 안 그럴 이유가 없잖아. 시간만 허락한다면 더 오래 함께 여행하고 싶을 텐데... 그리고 따라갈 수 없다면, 매정하게 안녕 하고 올라가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친구의 뒷모습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봐주겠지.. 마지막 뒷모습을 기억할 테고.... 이 사진처럼....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이 둘은 먼저 떠나갔다. 노랑 커버가 유난히 튀어 재밌기도 했지만,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그랬듯 적적했다, 아주 많이.............. 비까지 내렸으니 오죽했을까.....

+ '여행'이라는 상황 속에서 여행 동지가 되어 몇 날 며칠을 함께 동고동락 잘 해놓고서는 마지막을 그렇게 삭막하게 마무리하는 건 어쩐지 서글프다. 나는 저런 마인드의 사람은 거부할 수밖에 없고 호들갑스럽게 난리치는 것도 싫지만, 저렇게 인정머리없이 사람 관계가 싹둑 잘리는 느낌은 그 기분 참 더럽거든... 그 사람이 그거밖에 안 되는 인간으로밖에 안 보이고 나 역시 이거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하는 생각에. 저런 인간과 대체 함께 있는 동안 뭘 한 건가 싶고 사람 인연이 참으로 우습구나 하는 지리멸렬한 생각이 끝도 한도 없이 든다. 그렇기에 사람 인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버리는 부류의 인간은 두 번 다시 상종하고 싶지 않다. 허탈한 기분은 지금까지 경험이면 족하다.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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