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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2008. 10. 20. 23:37


사과, 강이관 감독님


사랑 그 자체를 이렇게만치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직설적으로 드러내주는 영화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사랑에 대한 고찰이라 운운해도 대게는 적당하게 버무러진 포장이 있는게 당연지사거늘 영화 '사과' 속에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고 하면 이상한 건가? 영화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정작 그 어떤 영화보다도 관객들은 보는 내내 지난 사랑들의 지독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오를 것이다. 그 사랑이 쓰디쓰면 쓸수록, 받아들이는 감내의 몫은 아마도 개인차가 상당할 테고. 한국 영화 중에 최고의 로맨스 영화는 '봄날은 간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과'를 본 순간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사랑 영화는 나오기 힘들 듯하다. 그래서 최고의 평점을 날린다. 3,4년 만에 빛을 본 더없이 귀한 작품이라 더 고맙고 이 영화를 가슴에서 진심으로, 진정으로, 뜨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내게도 고맙다. 또 한가지, 눈물을 쥐어짜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










처음에는 제일 나쁜 캐릭터가 '김태우'인 줄 알았다. 헌데 가만히 곱씹어보면.. 그 사람은 분명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위에도 적었다시피 문소리는 사람을 숨막히게 하는, 뭐든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나만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과는 사랑을 할 수가 없다. 결국엔 지쳐서 손을 놓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연인, 부부라해도 그 둘은 절대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없지 않은가. 강요도 한 두 번이다. 그런 사람과 사는데 어느 누가 지치지 않을까. 그러면서 김태우도 점점 마음을 닫기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자신이 먼저 소통을 거부했다. 심하게 처음 한 번 싸우게 되던 날, 김태우는 분명히 손을 먼저 내밀면서 닫힌 문을 여러 번 두드렸고 그녀에게 '내가 거지냐고' 되물을 정도로 화를 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단절에 절망했을 테고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하나씩 닫은 게다. 부부 사이라는 게 아무리 살을 맞대고 자는 가까운 사이라 해도 한 번 마음의 문이 닫히기 시작하면 그 벽은 나날이 높고 높아져, 나중에는 그 어떤 걸로도 허물 수 없는 사태에 이르고 말잖아. 그러면서 그런 상태가 일상이 되고 점점 무뎌지면서 이렇게 지내는 게 당연시 되어가는.. 참 무섭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엮여져 있지만, 이렇게 차가운 관계가 어디 또 있을까. 결론은 나역시 문소리가 가장 숨막혔다는 거다. 어쩌면 그녀가 모든 이별을 자초했을 지도... 내가 싫어하는 모든 걸 다 갖췄더라.



난 연인 관계에 있어 어떤 게 가장 숨막히는 지 알아요? 왜 내가 오랜기간동안 연애를 못 하는지, 그건 내가 너무도 잘 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너무도' 편한 관계로 바뀌어 가는 게 정말로 싫다. 친구와도 예전에 이야기를 나눴지만, 편해지다 보면 우리는 연인 사이임에도 '가족같은 유대'를 느끼게 할 정도로 너무 나를 편하게 대하는 순간이 온다. 난 그런 순간을 겪으면 상대에게서 달아나고 싶어진다.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지만, 그 정도로 편한 관계라면 나는 차라리 오랜 연애를 하지 않고 말겠다. 편하다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 해서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금방 알아차리는 뭐 이런 긍정적인 해석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편하다= 막 대한다'라고 하면 너무 과격한 해석이고 어느 순간부터 신경을 쓰지 않는, 무뎌지는 순간을 못 견디겠다. 친구같이 편한 느낌과는 또 다른 문제.. 말의 뉘앙스를 설명하는데 적절한 말을 못 찾고 있는 이 현실이란... 가족처럼 대한다라는 어감이면 대충 느낌이 통할까?


이 영화를 보시려는 분들에게 한말씀 올립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건 연애, 결혼에 대한 엄청난 회의감이 밀려올지도 모르죠. 문소리 캐릭터를 통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그녀의 입장에서만 처음에는 보게 됩니다. 허나,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그와 그녀가 왜 그렇게 단절된 관계로까지 치닫을 수밖에(거의 파국이죠) 없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서 한 번 보세요. 그렇다면 이 영화가 조금은 더 깊이 와닿으면서 연인 혹은 부부 관계라는 것의 소통, 지향점, 존중이라는 것에 대해 되돌아 볼 계기가 될 거예요. 이러니까 여러모로 의미깊은, 고마운 영화일 수밖에 없네요. 사랑은 쌍방이 함께 하는 거니까. 절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변하는 건 아니거든요.



+ 사과 포스터는 온데 간데 없고 김태우님 사진만 쿨럭. 환하게 웃는 모습도 좋지만, 이상하게 태우님의 쓸쓸한 표정이 더 좋아요 어휴...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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