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클릭) RSS구독하기

inside 2009. 2. 17. 00:16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Kirschblüten - Hanami), 도리스 되리 감독님



흔히들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이야기한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남은 사람의 삶은 계속 된다라고 말이다. 그 말에서 비춰지는 죽음은 단순히 무상함, 덧없음으로 보여지는 감정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이의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 지독한 그리움에 오열을 하고 결국 살아 생전 그녀가 그렇게도 간절히 하고자 했던 것을 해주려고 온전히 '그녀'를 위해 길을 떠난다. 한 사람의 죽음 뒤 '회한'이라는 감정 만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것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끝내 침묵하고 진정으로 원했던 그 모든 것들을 가슴 깊숙이 묻고 만다. 부부의 삶 속에 그녀만의 것은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지만, 늘 그리워했다. 진정한 자신은 희미해져 갔지만, 누구보다 희생적이었기에 좋은 엄마, 아내였던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는 살아 있을 때 해주지 못한 그 모든 것들을 그녀의 죽음을 계기로 깨닫게 된다. 살아 있을 때 잘해줘도 모자란 시간이라는 말을 하지만,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기란 힘들다. 제 아무리 평생을 살아온 부부라 할지라도, 혈육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가족들이라 해도 말이다. 되려 제3자가 내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는데 더 고마운 순간이 많지 않던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제3자는 오로지 슬픔을 정신적으로 보듬어주기만 하면 끝이지만, 가족은 정신적인 것에 앞서 현실적으로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는 입장이라 더 각박하고 삭막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 그네들의 삶이 여유롭다면 상관없겠지만 하루하루의 삶을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이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뒷맛은 참으로 씁쓸하다.


영화의 힘으로 말미암아 앞으로는 회한이 남지 않도록 있을 때 더 잘해야지 하는 지극히 희망적이고도 이상적인 다짐따위는 하지 않겠다. 숱한 다짐들은 예전에도 셀 수 없이 했었기에 지키지 못 할 다짐은 하지 않는 게 나으니까.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옥죄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마음은 열어둘 거다.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더 짧은 부모님 혹은 누군가와 '백년 해로'를 약속하게 된다면 우리라는 이름으로 삶을 시작하게 될 때.. 막연히 잘해야지하는 뜬구름잡듯 두루뭉술한 말보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고싶어 하는, 그 열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해주겠다는 거. 적어도 '자신'을 잃게는 만들지 않겠다. 우리안에 '나'와 '너'가 뚜렷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이것 하나만큼은 꼭 지켜주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해본다.





‘부토’(舞蹈)라는 춤의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만약 이 춤을 직접 보았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장르를 막론하고 예술을 통해 죽음을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낭만적인 흥취로 다루어진 죽음이 아닌 진짜 죽음 말이다. 부토는 진정한 죽음의 세계를 보여준다. 임종을 맞은 사람이 몰아쉬는 마지막 숨, 혹은 일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시체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춤이 부토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삶은 '부토 무용수'였다. 처음에는 난해해 보이기만한 이 춤이 영화가 전개되면 되어갈수록 그가 그녀와 하나되어 이해되어 가듯이 나역시도 '부토'라는 것의 그 숨은 의미를 알고 보니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부토 공연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처음 접한 그 부토란 것에 넋놓고 빠져들게끔 보게 만드는 걸 보면. 사람이 가진 움직임은 저마다 다르기에 무궁무진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는 부토. 도리스 되리 감독님은 참 묘한 사람이다. 파니 핑크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시더니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벚꽃과 부토 그리고 죽음을 통해 상대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되는 그 모든 점이 내 마음에 들었다. 19일 개봉이니 꼭 보시라. 죽음이란 것에 대해 도리스 되리 감독 식으로 마음껏 표현하셨고 부토라는 새로운 일본의 현대춤을 알게 해줘서 좋았다. 매력, 그 이상이라 꼭 한 번 직접 보고 싶어졌으니까. 국내에는 '서승아'씨의 퍼포먼스가 유명하던데. 그리고 2년전부터 10월 초마다 열리는 '서울 국제 퍼포먼스 페스티벌'에서 보니 부토 퍼포먼스를 작년에도 했더라. 올해에 꼭 '부토'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원래도 영화를 보고나면 나를 자극해버린 무언가에 이끌리듯 편향되어 지극히 주관적으로 리뷰를 쓰곤 하는데 이 영화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리스 되리 감독님 영화는 그러고 보면 판에 박힌 기승전결이 아닌 그녀만의 감정 곡선이 있다. 감정의 능선이 자유자재라는 게 아니라 천천히 세심하게 조심스럽게 상승하다 종반부에 이르면 카타르시스를 터뜨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최고의 정점에서 영화는 천천히 막을 내린다. 부디 그 감정이 쉬이 걷히지 않도록 느리게 영화를 곱씹게 만들어주는, 절대 급하강하는 법이 없으니까. 오랜만에 내 안에 무언가를 불어넣어주는 고마운 영화 한 편을 만난 셈이다.

posted by 딸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