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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2009. 3. 4. 00:24



러시아 동시 통역사를 겸하고 있는 일본인 '요네하라 마리'씨의 그 치열한 통역의 일상들이 펼쳐진다. 물론, 일본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기에 일본어 기준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이, 당연한 거지만,  한국인인 나로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녀의 맛깔나는 책을 참말로 재밌게 잘 읽었다. 우리나라에도 동시 통역관련 책들이 있지만, 다소 전문적인 서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많아서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쉽게 접근 가능하고 나름 특수 직업군의 에피소드며 뒷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언어'에 관심이 많다면 꼭 한 번 보시라.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부모님 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보낸 나는 소련 대사관 부속으로 모든 수업을 본국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하여 러시아어로 가르치는 8년제 보통학교를 다녔다. 그전까지 일본에서 구리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그들의 모국어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수업과 일본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수업이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다. 먼저, 입학해서 알파벳을 배운 지 반년이 지나면 러시아어의 수업은 문학과 문법으로 분명하게 나뉘어져 3년까지는 1주일 24시간 중 절반을 차지한다. 4년과 5년에는 30시간 중 10~12시간, 즉 3분의 1이상, 6년이후에는 4분의 1이상을 하도록 되어 있다.

문학 수업은 다음 4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아동용으로 요약되거나 다시 씌어진 것이 아니라 문호들의 실제 작품을 다독한다. 학교 부속 도서관의 사서가 학생들이 빌린 책을 반납할 때마다 읽은 책의 감상보다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묻는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감상도 물어본다.

둘째, 고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시 작품이나 산문 에세이 중에서 주요한 부분만 암송한다. 저학년에서는 일주일에 두 편 정도로 많은 시 작품을 외우게 한다.

셋째, 초등학교 3년까지 일본에서 지낸 내 경험상, 국어 시간은 "그럼 아무개 읽어보세요"라는 선생님의 호명에 틀리지 않고 읽으면 그걸로 자리에 앉아서 끝나버렸는데, 소련 식 수업에서는 정확하게 전부 읽으면 방금 읽은 내용을 간추려서 이야기해야 한다. 한 단락이나 두 단닭을 읽으면 그때마다 요지를 서술해야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나무랄 데 없이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가면서 전혀 내용이 머리에 남지 않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러한 방식의 훈련을 받으면 자신이 읽는 속도와 이해하는 속도가 동시에 작용한다. 또 자신이 요약해서 남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입체적, 적극적으로 읽게 되는 효과가 있다. 단지 수동적으로 평탄하게 머릿속에 나란히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을 일절 섞지 않고 텍스트의 내용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습성이 생긴다. 넷째, 작문 수업은 주제를 결정하면 먼저 그 주제에 관한 명작을 수 편 선생님이 읽어준다.

사실 러시아어 수업뿐 아니라 역사, 지리, 수하, 생물, 물리 그리고 화학도 OX 식 시험은 전혀 없고 모두 구두시험이나 소논문 형식으로 측정했기때문에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필요했고 결국에는 러시아어의 표현력을 단련시키는 과정이 되었다. 문법 수업은 모국어를 더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분석 하자. 문장 구조를 냉정하게 떼어내어 분명하게 하자는 것이다. 러시아인에게도 모국어는 역시 공기와 같은 존재였지만, 여기서 외국어처럼 의식적인 인식 대상이 된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고 일본에 귀국하여 근처 구립 중학교에 편입한 나는 고교 입시용으로 외워야 하는, 문학사에 기록된 작품들을 실제로 읽은 동급생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작문을 쓸 때 점을 찍는 방법에 대해서 선생님한테 질문을 했다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지 못한 일에 질리고 놀라버렸다. 뿐만 아니라, 국어 시험에서 '다음 문장을 읽은 감상을 보기 중에서 고르시오' 라는 문제에 기겁을 했다. 자국어와 자국 문학에 대한 부당하리만치 허술한 취급에 의분마저 느꼈다. 그 무렵 프랑스나 스페인어 권에 살다온 학생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점에서는 크게 의기 투합했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사람들은 자국의 언어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드높은지, 그네들의 모국어 교육방식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들은 진정 뼛속 깊은 곳까지 모국어의 긍지로 빛나는 사람들이다. 축복받은 사람들이고 말고. 우리가 12년간 학교에서 배운 국어라고는 어렸을 적부터 오로지 시험용으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저 커리큘럼이 익숙지 않은 우리가 보기에는 숨이 막힐 거 같고 빡빡하게 구는 듯 보이지만, 어렸을 적부터 체득된다면, 그야말로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물 흘러가듯이 구사할 수 있으므로 축적된 표현력은 성인이 되었을 때 더 빛을 발하겠지. 원석이 오랜시간동안 다듬어져 빛나는 보석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토론 수업에 능하지 못 하고 토론 문화 자체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는 것 또한, 우리네 민족성을 탓할 게 아니라, 국어 교욱 체제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하지만, 이놈의 학교 체제는 몇 십년 전이건 지금이건 그 보수성에 변화라도 가하면 해가 되는지 공교육이라는 이름하에 모국어를 정말이지 망치고 있다. 정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저자가 의기투합했다던 그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시 그들의 교육 제도 하에서 모국어란 것을 제대로 익혀보고 싶다. 저 커리큘럼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통탄을 했으며 울분을 토했는지 모를 거다. 부럽고 또 부럽다.........



공기처럼 근원이 되는 언어

벌써 20년 전에 도야마 시게히코 씨가 유아기에 여러 언어를 습득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종을 울렸다. 유아는 우선 어릴 적부터 개성적 기본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최대한 사적인 언어가 바람직하다. 표준어보다 방언이 좋다. 방언보다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말이 좋다. 여기에 외국어가 섞이는 일은 최악이다. (중략) 방언, 표준어, 외국어 세 개가 서로 얽혀서 유아의 머리를 혼란하게 하기 때문이다. (중략) 가족과 함께 외국 생활을 한 가정의 아이가 종종 불안정한 사고력을 보이는 경우를, 유아의 외국어 교육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하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혼혈인이나 해외파 중에서도 일본어와 외국어 모두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초일류의 동시통역사가 있다. 개인적인 자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사람들의 지난 언어 습관을 물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떠오른다. 일정한 나이 (8~10살 정도)까지 일본에 생활 거점이 있었을 경우에는 철저하게 일본어로만 의사소통을 하며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외국어를 배우는 데 반드시 참고로 해야 한다. 먼저 만사 다 제쳐놓고 모국어의 능력을 높이는 일은 외국어를 잘하게 될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해나갈 것. 그러기 위해서는 한번 모국어를 외국어로서 떼어놓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말은 쉽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모국어는 우리에게 '공기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건, 역시나 '모국어의 소중함'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부분을 보고서 내가 생각을 잘못 했었구나 하는 사실도 알았다. 어릴 적에 조기 교육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습자지처럼 잘 받아들이기에, 이를 테면 영어 조기 교육이란 것도 과하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했었는데, 유아기에 여러 언어를 습득했을 시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모국어의 튼튼한 밑바탕아래 제2의, 제3의 모국어가 탄생할 수 있는 것, 이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이다.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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