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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 2010. 1. 5. 01:01





중동 국가가 제 아무리 술을 금한다 해도 특정 지역에는 술을 파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시리아 '하마'에 위치한 술 가게. 때는 바야흐로 크리스마스를 앞둔 저녁이었고 나를 포함한 오빠 두 명과 숙소에 있는데, 이런 날 술이 빠지면 되겠는가. 근데 이 사람들은 당최 술 마실 생각이 없고. 아쉬운 사람이 사러 가야지 별 수 있나. 행여나 상점 문 닫으면 어떡하나 하고 잽싸게 뛰어갔는데 다행히 문닫기 일보 직전. 문 안 닫았다고 너무 좋아하니까 아저씨가 참 묘한 표정을 지으시더이다. 한 사람당 최소 2캔 씩 사들고 숙소로 쫄래쫄래. 다들 사러 가기 전에는 술 생각 없더니만, 갖다 바치니 잘도 마셔대더라. 그럼 처음부터 맥주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샀을 것 아니오. 여기 술 종류도 많은데 맥주만 마셔본 게 두고두고 아쉽단 말씀. 종류별로 부어라 마셔라 했었어야 했는데. 뭐, 술 마시러 여행 온 건 아니지만. 아저씨 뒤에 보이는 맥주 캔을 내가 다 접수했음.




여기는 카이로. 네, 이집트 카이로에도 술 가게가 있습니다. 이때는 대규모 인원들과 우르르 다닌 덕분에 술이란 술은 종류별로 다 마셔본 듯. 이 할아버지 가게를 숱하게 드나들고. 술 값으로 얼마나 썼는 지 기억도 안 나고. 술에 기름진 음식을 마구 먹어대니 살이 아주 제대로 포동포동 오르더랍니다. 중동 여행하고 나서 찐 살들을 20대 내내 짊어지고 다녔지요. 딱히 운동을 하지 않으니 살이 빠질 리는 만무하고. 요즘은 술을 자제하는 얌전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다시 예전 몸무게로 돌아와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여행을 더 했어도 됐는데, 그놈의 술이 뭔지 술 값에 돈을 막판에 탕진해버려 오픈 티켓으로 끊어놨던 거, 다시 일정을 앞당겨서 한국으로 빨리 돌아왔다는 이야기.. 이 사진이 왜 흔들렸는지 나는 압니다. 술기운이 차올라도 로모는 항상 들고 다니다 보니, 헬레레 한 상태에서 찰칵. 이집트 시와 사막에서 밀주도 마셨고. 아, 이래서 이집트 여행은 다시 해야 합니다. 기억이라곤, 술 마시고 논 기억밖에 없으니 원. 이집트도 은근히 중소 도시가 많아서 사막에서 투어만 하지 않는다면, 정형화된 루트라 하더라도 혼자 둘러보기에 괜찮거든요....


중동의 첫 시작은 터키였고 터키 국경을 넘어서 시리아로 올 때, 대한민국이 아닌 세상에 '터키 향수병'에 걸렸었다. 알레포에 있는 내내 터키의 기억들이 자꾸만 생각나서 다시 되돌아 가야 하나 생각까지 했었으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하마'란 도시에 와서 안정을 되찾았고. 이집트를 가기 위해서는 육로로 응당 요르단을 밟아야 하니 그래, 이왕 밟는 거 페트라만 보자 싶어서 갔건만.... 페트라에 있는 3일 내내 비가 퍼붓는 거 아니겠는가. 정말 3일을 꼬박 기다렸다. 더 지체하면 여행 일정이 틀어질 거 같아서 날이 제발 화창해지기만을 바라고 바랐건만, 결국은 이집트 다합으로 떠나는 배에 오를 무렵, 나보다 하루를 더 기다린 얄미운 계집애 하나를 만났는데, 자기는 하루 더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 날씨가 진짜 화창했다고. 나는 아랑곳 하지도 않고 혼자 신나셨더라. 이런 우라질... 아무튼 내내 혼자서 여행을 다닌 터라 여행객과의 어울림에 꽤 굶주려 있었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정말 떼거리인 10명 이상의 멤버와 단합이 되어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잊지 못 할 에피소드는 남았으되 이집트란 나라에 대해 남은 것은 없어서 늘 유감이다. 가장 아쉬운 여행지를 꼽으라 한다면 이집트인 것도 그 이유고. 그야말로 알코홀릭 상태에서 만취해 일행들과 흥에 겨워 지냈으니 이제 와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내가 자초한 일인데. 터키의 시작은 창대했으되 이집트의 마무리는 알코홀릭으로 빛바랜 나의 중동 일지다. 내 여행에 있어 오점으로 남은 유일무이한 이집트. 내 여행 목적을 엄청나게 이탈해버렸으니까. 알코홀릭의 쓰디쓴 최후를 맛 본 셈.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역시나 밖에서도 새더라. 그래도 이집트 사건 이후, 다른 여행지에서는 알코홀릭된 적이 없다는 걸 밝혀둔다. 커밍아웃 하고 나니 왠지 속이 시원하고나. 20대의 묵은 잔재를 새해에 정말 말끔히 씻어내고 싶은 건가. 정말 요새 들어 커밍 아웃이 너무 잦다, 잦아.
posted by 딸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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