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클릭) RSS구독하기

wander 2008. 11. 3. 22:41



'뻥 터져 버린 이야기- 터키에 영역표시 제대로 하고온'에 등장했던 그 문제의 테라스에서 봤던 아침의 풍경이다. 이곳은 '바람의 언덕' 포스팅을 했었던 아마스라. 이 풍경만 보고 있자면 세상에 더없을 평온한 아침 그자체인데 이때의 내 마음은... 우리돈으로 1만원이면 12-3$ 정도라 꽤 가격을 주고 간 곳이건만 (이래서 아는 사람의 추천은 무시무시한 거였다) 11월 말, 한 겨울에 난방 안돼, 찬물로 머리 감아........... 아악 아악. 어찌나 저 밖 풍경이 야속하게만 느껴지던지. 하긴 저 풍경이라도 없었으면 나는 자학모드로 '이건 아냐, 세상이 내게 이럴 순 없어' 하며 엉엉 거렸을 게 뻔하긴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더라.




역시 여행에는 에피소드빼면 시체인게, 이틀 밖에 머물지 않은 이 곳이건만 별의 별일이 다 있었다. Bartin에서 돌무쉬를 타고 40분 여간 달려야 여기 아마스라에 도착을 하는데, 때는 밤이었고 돌무쉬 안에는 사람들이 다 앉아 있어서 무거운 배낭 가방만 바닥에 내려놓고서 아마스라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룰루랄라 상태였는데 갑자기 웬 남자분(아니, 아저씨였다)께서 내게 손짓을 하며 자신의 자리를 양보씩이나 해주시면서 여기 앉으란다. 당연히 착하게 거절할 내가 아니기에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앉고서는 고맙다 했었지. 오오- 중동은 여성에게 자리도 양보해주는구나. 참 바람직한 나라야 이러면서. 중동 여행 할 맛 제대로 나는데(물론 아저씨지만 그래도!) 하고 속으로 생각하다 보니 함께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게 됐는데 그분 영어가 꽤 유창하신 거다. 속으로 흠칫 놀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역시.... '영어 선생님'이셨다는 거 아니겠는가. 어쩐지 어쩐지. 잘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게야. 바이람(라마단이라는 금식 기간이 끝나면 또 몇 주간 즐겁게 마시고 노는 바이람 기간이 도래) 기간에 딱 맞춰 도착한 지라 숙소가 거의 없을 거란다. 더군다나 시간도 너무 으슥할 정도로 늦게 도착을 했고. 그래서 그분께서 자신이 아는 사람을 통해 숙소를 알아봐 줄 터이니 밥이나 먹으러 가잔다. 오! 밥이라. (내가 배고픈 건 어찌 아시고, 고맙게시리)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또 내가 혼자 여행하고 처음 만난 현지인이기도 해서 이야기도 더 나눠보고 싶은 마음에 아주 흔쾌히 따라나섰다. 나도 밥 사주는 사람이 내게는 착한 사람, 고마운 사람이라는..





라키 술이 내게는 그닥 맞는 편이 아니라 (공업용 알코올보다 더 맛이 이상했다 하면 어떤 느낌인지 아시려나) 그리 많이 마시진 않았는데 배부르고 대화도 무르익다 보니, 이분께서 바닷가를 좀 거닐자고 제안을 하신다. 그때까지는 뭐, 아 그래요 좋아요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는데....... 아악, 갑자기............ 정중 모드로 'May I kiss you?' 이러시는 게 아닌가. 켁켁켁. 아니 아저씨..... 저, 저기... 언뜻 보기에도 말이죠. 당신과 나는 굉장한 나이차가 나 보이지 않나요. 뭐, 그런 마음에서 정중히 물은 거겠지만... 여행 중의 이런 짜릿한 순간을 고대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으엉. 물론, 사진 속 외모만 봤을 때는 나이 40은 훌쩍 넘은 걸로 보이지만, 여기 사람들이 워낙에 들어보이는 터라 추측건대 한 30대가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미혼이셨..... (믿기지 않지만) 당신이 좀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바닷가를 산책하며 내 기꺼이 키스를 감미롭게 나눴겠지만, 그러기에는 매력이 2%가 아니라 99% 부족하셨다는. 아니 아버지같은 분과 키스를 할 순은 없... 다고요. 물론, 멋지시면 상관이 없겠지만, 저는 너무 부담이 되는 지라. 그래서 나 역시 정중하게 No를 했다.


모임이 파하고 약속했던 숙소로 안내인 분과 함께 갔는데, 뭐 보기에는 널찍하니 괜찮아 보여서 고맙다며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엇- 눈치가 살짝 이상... 차 한 잔이라도 더 나누고 가실 법한 요량이 보인다. 자정이 넘었는데 말이지요. 아까 분명히 거절했는데 이 분이 내 의도를 잘 못 알아차리셨나 싶어 겁이 덜컥 나는 바람에 아, 피곤이 몰려온다, 얼른 자야겠다고 다음에 봐요 이렇게 대충 분위기를 수습하고 문을 닫고서 걸어잠갔다. 어휴... 너무 친절함으로 무장을 하신 터라 부담스러워서 내일이라도 다시 안 마주치게 되길 바라고 바랐다는.



이 황당한 키스 사건을 친구에게 엽서로 고스란히 생생하게 적어보냈는데, 웬 걸. 엽서 특성상 불특정 다수가 다 볼 수 있는 관계로 이 적나라한 사건 경위를 친구 어머니께서 먼저 보셨다는 거 아닙니까 크하하. 주로 엽서 보낼 때는 여행하고 있는 지금 기분을 적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적어서 날려 보내는데, 엽서 받으시는 분들 긴장 좀 하셔야 될.... 친구가 아마 저때문에 어머니께 꽤나 쪽팔렸을 거라는, 아니 민망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더군요 헤헤-




아무튼 외모가 아버지뻘 되는 분께 정중한 키스 요청 구애(?)를 받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더이다. 좀 더 멋진 분이었어야 했다는 흑흑.

posted by 딸뿡  
,